계산하는 말이 유럽을 흔들다
1904년 베를린의 한 안뜰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은퇴한 수학 교사 빌헬름 폰 오스텐이 기르던 말 한스가 사람의 질문에 발굽을 두드려 답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덧셈과 뺄셈은 기본이고, 시계를 읽고 요일을 맞히고 뜰에 모인 사람의 수까지 세어 보였다. 기록에 따르면 한스의 정답률은 89%에 이르렀다. 당시 유럽 신문들은 이 말을 두고 동물 지능의 새로운 증거라고 불렀다. 어떤 날은 뜰에 100명이 넘는 구경꾼이 몰렸고, 학자와 군인, 상인이 뒤섞여 발굽 소리를 셌다. 말이 답을 맞힐 때마다 박수가 터졌고, 틀리면 사람들은 오히려 안도했다. 기적을 의심하는 마음과 믿고 싶은 마음이 같은 뜰에서 부딪혔다. 폰 오스텐은 그 열기를 즐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교육의 새로운 방법을 증명하고 있다고 믿었고, 말에게 셈을 가르치는 일을 학문이라고 여겼다.
폰 오스텐은 관람료를 받지 않았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뜰에 들어와 직접 질문할 수 있었고, 그는 자신의 방식을 숨기지도 않았다. 사기라고 확신하며 찾아온 기자들조차 돌아설 때는 판단을 미뤘다. 그러나 3년 뒤, 한 젊은 연구자가 조건 하나를 바꾸자 89%였던 정답률은 6%로 주저앉는다. 이 붕괴가 심리학 전체의 실험 설계를 바꿔놓았다.
독일 교육당국이 보낸 13명의 조사단
소문이 커지자 독일 교육당국이 직접 조사에 나섰다. 심리학자 카를 슈툼프를 앞세운 13명의 조사단이 구성됐다. 구성원은 심리학자만이 아니었다. 동물학자, 수의사, 서커스 조련사, 학교 교사까지 포함돼 있었다. 속임수가 있다면 어느 각도에서든 걸러내겠다는 의도였다.
조사단은 가장 먼저 폰 오스텐을 의심했다. 그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으리라 본 것이다. 그래서 폰 오스텐을 뜰 밖으로 내보내고 낯선 사람에게 질문을 맡겼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주인이 없어도 한스는 여전히 맞혔다. 조사단은 뜰 바닥을 뜯어보고 주인의 주머니 속까지 확인했다. 숨겨진 줄이나 소리 장치가 있는지도 살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조사단은 결국 의도적인 속임수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슈툼프는 보고서 끝에 한 줄을 남겼다. 아직 통제하지 못한 조건이 하나 남아 있다는 문장이었다. 세상은 환호에 취해 그 한 줄을 읽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 한 명은 그 문장에서 출발했다.
오스카 풍스트, 말이 아니라 사람을 관찰하다
그 제자가 오스카 풍스트였다. 당시 26살이던 그는 조사단과 정반대의 질문을 던졌다. 모두가 말의 지능을 검사할 때, 그는 질문하는 사람을 관찰 대상으로 삼았다. 이 발상의 전환이 사건 전체를 해결한다.
풍스트는 뜰 한가운데에 커다란 천막을 세웠다. 외부의 소음과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질문자와 말 사이를 가르는 나무 칸막이를 짰고, 말의 시야를 덮는 커다란 가리개도 준비했다. 그가 통제한 조건은 단 2가지였다. 질문자가 정답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말이 질문자를 볼 수 있는가.
이 2가지 조건을 조합하면 네 가지 상황이 나온다. 풍스트는 수백 번의 시행을 반복하며 각 상황의 정답률을 기록했다. 실험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어떤 날은 같은 질문을 40번 넘게 되풀이하며 발굽 소리를 세었고, 조수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뜨기도 했다. 그러나 기록이 쌓이자 결과는 잔인할 만큼 선명해졌다.
89%에서 6%로, 단 하나의 조건이 만든 붕괴
질문자가 정답을 알고 있는 조건에서 한스의 정답률은 89%였다. 반면 질문자조차 답을 모르는 문제를 냈을 때 정답률은 6%로 떨어졌다. 말의 뇌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오직 질문하는 인간의 머릿속뿐이었다.
말의 눈을 가려도 같은 붕괴가 일어났다. 질문자가 답을 알아도 한스가 그 사람을 볼 수 없으면 정답률은 무너졌다. 두 조건을 종합하면 결론은 하나였다. 한스는 질문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질문자를 보고 있었다.
풍스트는 보고서에 한 문장을 남겼다. 한스는 질문을 이해한 적이 없고 다만 사람을 읽었을 뿐이라는 문장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도대체 사람의 무엇을 읽었다는 말인가.
한스가 읽어낸 3가지 신호
풍스트는 질문자들의 몸을 초 단위로 기록했다. 그렇게 찾아낸 신호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고개의 각도다. 사람은 말이 발굽을 두드리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숙인다. 그리고 정답 횟수에 다다르는 순간 아주 조금 들어 올린다. 이 동작의 크기는 밀리미터 단위였다.
두 번째는 눈썹과 호흡이다. 긴장이 풀리는 찰나에 눈썹이 올라가고 콧구멍이 벌어지며 숨이 새어 나온다. 세 번째는 상체의 기울기다. 몸이 뒤로 미세하게 물러나는 것만으로 한스는 발굽을 멈췄다.
풍스트가 실제로 잰 고갯짓의 크기는 겨우 몇 밀리미터였다. 사람의 눈으로는 알아채기 어려운 크기였지만, 하루 종일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며 살아온 말에게는 충분히 큰 신호였다. 세 신호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모두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질문자들은 자신이 신호를 보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알려주어도 믿지 못했다.
관찰자 기대 효과와 이중맹검의 탄생
이 현상은 훗날 관찰자 기대 효과, 혹은 영리한 한스 효과라는 이름을 얻었다. 핵심은 단순하다. 연구자가 원하는 답을 알고 있으면 그 기대가 미세한 몸짓으로 새어 나가 대상의 행동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실험 설계의 표준을 통째로 바꿨다. 오늘날 임상시험에서 환자뿐 아니라 약을 건네는 의사에게도 어느 쪽이 진짜 약인지 알리지 않는 이중맹검 절차가 표준이 된 이유다. 관찰자가 결과를 알고 있는 한, 그 결과는 이미 오염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수사 현장에서도 같은 원리가 문제가 됐다. 냄새를 쫓는 탐지견이 핸들러의 기대에 반응해 아무것도 없는 곳을 지목한 사례들이 보고되면서, 핸들러에게도 정답 위치를 알리지 않는 절차가 도입됐다. 동물 인지 연구에서는 더 직접적인 영향을 남겼다. 개나 돌고래, 앵무새의 인지 실험에서 조련사를 화면 밖으로 내보내거나 실험자와 분리하는 절차는 모두 이 안뜰에서 출발했다.
7년의 기록, 그리고 등을 돌린 세상
한스의 이야기는 7년에 걸쳐 흘렀다. 1900년 폰 오스텐은 볼링핀을 늘어놓고 말에게 셈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04년 조사단이 다녀갔고, 유럽 신문마다 계산하는 말이 실렸다. 1907년 풍스트가 실험 결과를 책으로 펴내자 환호는 그해에 사그라들었다.
세상의 반응은 빨랐고 잔인했다. 얼마 전까지 기적이라 부르던 사람들이 곧바로 조롱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정작 폰 오스텐은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풍스트를 뜰에서 내쫓았고, 한스를 데리고 독일 곳곳을 돌며 시연을 이어갔다.
1909년 폰 오스텐이 세상을 떠난 뒤 한스는 다른 주인에게 넘겨졌다. 이후 한스의 행적은 기록에서 흐릿해진다. 남은 것은 한 사람의 기대가 만들어낸 89%라는 숫자였다.
풍스트가 자기 자신을 실험대에 올린 이유
이 이야기에서 가장 덜 알려진 대목은 마지막 실험이다. 풍스트는 마지막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골랐다. 그는 한스가 서 있던 자리에 서고 동료에게 질문자 역할을 맡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풍스트는 상대의 머릿속 정답을 대부분 읽어냈다. 사람의 몸이 그만큼 정직하게 속을 흘린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더 서늘한 것은 반대 방향의 실험이었다. 자신이 질문자가 되었을 때, 풍스트는 신호를 보내지 않으려 온 힘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신호를 멈추려 했지만 몸이 계속 답을 흘리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훈련된 심리학자조차 자신의 기대를 숨기지 못했다는 이 기록은, 이 실험이 말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일상에 숨은 안뜰
이 이야기를 100년 전 해프닝으로만 읽으면 절반만 이해한 것이다. 관찰자 기대 효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한다.
상사가 회의에서 의견을 물을 때, 이미 자신이 선호하는 답을 미세한 표정으로 흘리고 있다면 회의는 답을 찾는 자리가 아니라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질문보다 부모의 얼굴을 먼저 읽는다.
연인 사이의 대화도 다르지 않다. 괜찮으냐는 질문에 담긴 표정이 이미 원하는 답을 가리키고 있다면, 상대의 대답은 정보가 아니라 반사에 가깝다. 우리는 답을 얻는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기 기대를 되돌려 받는 경우가 많다.
기대를 숨기는 3가지 연습
일상에서 이 함정을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 번째는 질문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먼저 말하지 않고 상대의 답을 먼저 듣는다. 회의에서 결정권자가 마지막에 발언하는 규칙은 이 원리를 제도화한 것이다.
두 번째는 답을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보게 하는 것이다. 채용 면접에서 지원자의 배경 정보를 심사위원에게 가리는 블라인드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반응을 지연시키는 연습이다. 상대의 말에 즉시 표정으로 반응하지 않고 한 박자 늦추면, 상대가 읽어낼 신호가 줄어든다.
세 가지 모두 핵심은 같다. 내 기대를 상대의 답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조직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설문 문항을 만들 때 원하는 답이 드러나는 표현을 쓰면 응답은 이미 기울어진다. 사용자 인터뷰에서 개발자가 직접 질문하면, 참가자는 화면이 아니라 개발자의 표정을 보고 답한다. 그래서 사용성 테스트에서는 제품을 만든 사람을 관찰실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기본 규칙이 됐다.
마치며
영리한 한스는 셈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을 읽는 능력만큼은 어떤 인간보다 뛰어났다. 그리고 그 능력을 길러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는 이미 우리가 원하는 답의 그림자가 섞여 있다. 상대의 대답이 이상하리만치 내 마음에 꼭 맞았다면, 그 답을 미리 만들어 준 사람이 나 자신일 수 있다.
기대는 말보다 먼저 새어 나간다. 오늘 누군가에게 답을 묻기 전에, 내 표정이 먼저 답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만 확인해 보자. 그 한 번의 확인이 대화의 질을 바꾼다.
영리한 한스 사건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결말이 통쾌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속인 사람도 없고 벌을 받은 사람도 없는데, 모두가 함께 틀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신하는 판단의 상당수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사실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기대에 맞는 반응을 받아 온 것이다.